미중 정세와 무관하게 성장하는 공동대학, ‘섬처럼’ 남은 학문의 자유 공간
미중 관계의 긴장과 고등교육의 이중성
2020년대 중반, 미국과 중국 간의 정치적, 외교적 갈등은 기술, 안보, 외교,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눈에 띄는 예외가 존재한다. 바로 양국 간의 고등교육 협력이다. 특히 중국 내에 설립된 미국-중국 합작 대학, 이른바 조인트 벤처 유니버시티(Joint Venture Universities, 이하 JVU)는 갈등의 중심에서 조용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듀크 쿤산 대학교(Duke Kunshan University), NYU 상하이(NYU Shanghai), 원저우킨(Wenzhou-Kean University), 톈진 줄리어드(Tianjin Juilliard School), 그리고 존스홉킨스-난징센터(Hopkins-Nanjing Center) 등은 모두 이 같은 공동 운영 체계의 대표 사례다. 이들은 중국의 법적 틀 안에서 운영되지만, 교육 내용과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국제적 기준을 따르고 있다.
정치의 경계를 넘는 공동대학의 생존 전략
이러한 공동대학들은 단순한 국제 교류의 산물이 아니다. 이들은 정교하게 설계된 리더십 구조,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교적 대화, 그리고 양국 정부의 전략적 유연성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다.
중국 정부는 JVU에 대해 일반 중국 대학보다 훨씬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고 있다. 법적으로는 이들 대학의 운영이 중국인 총장과 중국인 과반 이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 측과 공동 운영하는 모델을 취하고 있다. 듀크 쿤산의 경우, 중국인 총장이 미국인 부총장과 권한을 나누며 운영하고 있으며, NYU 상하이 역시 이중 리더십 체제를 도입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의 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된 상황에서도, JVU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운영을 허용받고 있으며, 이사회와 학문 위원회를 통해 주요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는 일반 중국 대학에서는 보기 힘든 학문적 자율성과 조직 운영의 독립성을 의미한다.
듀크 대학교 총장 방문과 고위급 외교의 지속
2023년, 듀크 대학교 총장 빈센트 프라이스(Vincent Price)는 쿤산 캠퍼스를 직접 방문하여 중국 교육부 차관과 회담을 가졌다. 이 방문은 단순한 의례를 넘어, 미국 측의 장기적 협력 의지를 중국 측에 명확히 전달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공동대학이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양국 간 외교적 신뢰의 상징적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커리큘럼의 양면성: 국제 기준과 중국 규제의 절묘한 조화
JVU의 커리큘럼은 서구식 자유학문 기반 위에 중국 정부의 요구 사항이 절묘하게 결합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예컨대 듀크 쿤산과 NYU 상하이는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며, 자유전공과 융합교육 중심의 학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중국의 일률적 시험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개별 역량을 존중하는 접근 방식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몇 년간 모든 고등교육기관에 ‘이념 및 시민 교육’ 강의를 필수화했으나, JVU들은 이를 자국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구성하였다. NYU 상하이의 경우, 해당 과목은 4년 중 단 1주일만 진행되며, 학점도 부여되지 않는다. 수업 내용은 주로 중국 역사와 문화, 지역사회 탐방 등으로 구성되어 정치적 선전의 색채는 거의 제거되어 있다.
많은 외부 관찰자들은 중국 내에서의 학문 자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JVU는 예외적인 공간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공동대학 교수들은 강의 내용과 자료 선정에 있어 큰 제약 없이 자율적으로 수업을 구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감한 이슈인 홍콩 시위나 대만의 정치적 지위 같은 주제도 수업에서 자유롭게 논의되며, 도서관과 온라인 자원 접근도 검열 없이 가능하다. 이는 VPN을 통해 본교의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다문화적 캠퍼스, 학생과 교수의 참여로 살아 숨 쉬는 교류
공동대학이 단순히 운영 구조와 커리큘럼에만 독립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캠퍼스 커뮤니티 그 자체가 국제 교류의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듀크 쿤산과 NYU 상하이 등은 전체 학생의 50~65%가 중국 출신이며, 나머지는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이 만들어내는 캠퍼스의 일상은 동서양이 함께 살아가는 실시간 문화 교류의 장이다. 학생들은 이중 언어 토론, 다문화 행사, 공동 프로젝트 등을 통해 서로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깊이 이해하며, 이는 양국 정부가 바라는 ‘소프트 외교’의 이상적 모델이 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최소 한 학기 이상 미국 본교에서의 수학 또는 상호 교환 과정을 포함하고 있으며, 미국 학생들에게도 중국 체류 기회를 제공한다. 이는 양방향 교류의 실질적 기반이 되고 있다.
교수진의 역할: 문화적 감수성과 학문적 실험의 조화
교수진 역시 이 구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미국 본교 또는 전 세계에서 채용되며, 국제적 교육 경험과 다양한 교수법을 공동대학에 도입하고 있다. 일부 교수는 수업에 민감한 정치사례를 포함시키기도 하며, 중국 학생과의 토론 속에서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교수진은 강의 방식에서 문화적 적응력을 발휘하면서도 핵심 학문 원칙을 지켜내고 있으며, 이는 공동대학의 신뢰도와 학문적 완성도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입학 경쟁률과 인기: 증가하는 수요가 보여주는 신뢰
JVU의 인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듀크 쿤산은 2023년 기준 3,326건의 국제 지원서를 접수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77% 증가한 수치다. NYU 상하이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외국인 학생의 중국 입국이 제한된 와중에도 유일하게 복귀 허가를 받은 대학으로, 약 1만 9천 건에 달하는 국제 지원서를 기록하였다. 이는 공동대학이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고등교육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JVU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 내 일부 정치인과 비평가들은 중국이 이러한 교육 협력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우려하며, 경제적 수익도 미미하다는 점에서 본교에 실질적 이익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동대학은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공공 외교의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
냉각 속에도 따뜻한 지성의 통로
중국과 미국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은 더욱 격화되고 있지만, 교육이라는 통로는 여전히 열려 있다. 공동대학은 단순한 학위 수여 기관이 아닌, 문화와 가치의 교차점에서 작동하는 복합적인 플랫폼이다. 이들은 글로벌 시민을 양성하며, 정치적 경계를 넘어선 이해와 협력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가 긴장 속으로 진입할수록, 이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교육 공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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