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릴러 영화에서 관객을 끌어당기는 건 단순한 총성과 추격전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물이 가진 상실, 고뇌, 선택의 무게가 진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넷플릭스가 아닌 극장 개봉으로 화제를 모은 2025년작 《The Amateur》는 오랜만에 그 ‘심리적 긴장’을 담아낸 영화다. 이 작품은 복수를 다루지만, 그 방식이 조금 다르다. 총을 든 킬러가 아니라, 책상 앞에서 암호를 해독하던 ‘평범한 남자’가 복수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CIA라는 거대한 조직의 어두운 민낯이 드러난다.
《The Amateur》는 영화 속에서 흔히 보이던 클리셰 — 죽은 아내, 거대한 음모, 복수를 꿈꾸는 남자 — 를 재조립하면서도, 기존 스파이 스릴러의 전형을 교묘히 비틀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복수는 정의일까?” “당신은 진실을 감당할 수 있는가?”
아내를 잃은 남자, 시스템을 해킹하다
이야기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CIA 암호 해독가 찰리 헬러(Charlie Heller, 라미 말렉 분)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날카로운 두뇌와 방대한 지식을 가진 분석가지만, 책상 밖으로는 거의 나서지 않는 인물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그의 삶은 아내 사라(레이첼 브로스나한 분)가 런던 출장 중 테러 공격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급격히 무너진다. 하지만 찰리는 이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고 직감한다.
그는 CIA 내부 문서에서 테러를 유도하고 묵인한 불법 작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고, 해당 작전에 자신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가 ‘목표물이 아닌 민간인’이었음에도 죽음을 방조한 이들이 바로 동료들이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 이때부터 찰리의 복수는 단순한 슬픔이나 분노가 아닌, 조직을 향한 배신감과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비롯된다.
복수의 방식은 다르다
찰리는 CIA를 상대로 협박을 감행한다. 조직의 비밀 작전이 담긴 암호 파일을 무기 삼아, 자신에게 요원 훈련을 시켜달라고 요구한다. 이 훈련을 맡는 인물이 바로 로렌스 피시번이 연기한 헨더슨 요원이다. 그는 “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경고하지만, 찰리는 ‘기술과 머리로’ 그들을 뛰어넘는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이 설정이다. 찰리는 본능적으로 총을 쏘거나 격투를 벌이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를 킬러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논리, 해킹, 분석, 심리전, 정교한 트랩과 폭발 장치 등을 이용해 목표를 제거한다. 이 점에서 그는 ‘CIA가 만든 괴물’이자, ‘CIA의 허술함을 증명하는 존재’가 된다.

라미 말렉의 절제된 연기와 캐릭터의 진화
찰리는 전형적인 액션 영웅이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라미 말렉의 연기가 빛난다. 한 인터뷰에서 감독 제임스 호즈는 “찰리는 영웅이 아니라 ‘질문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말렉은 복수심으로 타오르면서도 인간적인 약함과 갈등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죽지 않기 위해 죽여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면서, 관객은 그가 도덕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된다. 《The Amateur》는 그런 인물의 내면을 결코 납작하게 다루지 않는다.
“진짜 적은 누구인가?” — CIA와 국가 권력의 이면
이 영화가 통쾌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단순한 복수극의 쾌감 때문만은 아니다. 찰리가 싸우는 대상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그 테러를 방조하거나 정치적 의도로 이용한 내부 세력이다. CIA는 비밀 작전을 통해 공공의 적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갔다. 조직은 사건을 은폐하고, 내부 고발자는 제거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명백하게 미국 정보기관의 도덕적 불감증을 조명한다. 이는 단순한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충분히 공감되는 메시지이자 비판이다. 《The Amateur》는 ‘국가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국가가 너를 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고전적 구성과 느슨한 리듬 – 아쉬운 완성도
이 영화가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여러 해외 리뷰에서도 지적되었듯, 전체적인 전개는 다소 느슨하고, 일부 액션 장면은 긴장감이 떨어진다. 특히 후반부의 결전은 기대했던 것보다 임팩트가 약하다.
찰리의 마지막 선택 또한 영화적으로는 설득력 있으나, 복수극으로서의 감정 폭발을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아쉬움을 덮을 만큼 의미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권력, 윤리, 복수, 정의… 그리고 진실.
《The Amateur》를 보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건 “이 사람이 결국 해낸다”는 감정이었다. 그는 조직에 휘둘리지 않고, 정면 돌파했고, 시스템의 구멍을 정확히 겨눴다. 심지어 죽지 않았다. 이 단순한 사실이 통쾌하다. 현실에서는 보기 드문 결말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다. 누구나 시스템 안에서 침묵할 수 있지만, 소리 내는 사람은 결국 한 사람의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렉이 연기한 찰리는 그런 ‘침묵 속의 반란’을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The Amateur》는 전형적인 첩보 액션과 다르다. 복수를 다룬 영화지만, 그 복수는 총이 아니라 진실과 정보, 전략으로 이루어졌다. 라미 말렉은 통상적인 액션 히어로와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설득했고,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남긴다. “진실을 아는 자는 침묵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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