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의 경계에서 지속가능한 조직 문화를 상상하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 대학은 흔들리고 있다
고등교육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 재정 압박, 빠르게 재편되는 직업세계, 그리고 인공지능 기반 교육 기술의 확산은 대학이 수 세기 동안 유지해온 본질적 구조를 위협하고 있다. 더 이상 ‘지식의 신전’이라는 이상만으로는 대학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기 어렵다. 이 위기 앞에서 대학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는 독일 사회학자 페르디난트 튀니에스(Ferdinand Tönnies)가 제시한 고전 개념인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와 ‘게젤샤프트(Gesellschaft)’에서 찾아볼 수 있다. 두 개념은 사회를 바라보는 방식이자, 조직이 ‘사람’과 ‘성과’, ‘가치’와 ‘이익’을 어떤 균형 위에서 구성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한다.
대학의 전통: 게마인샤프트로서의 뿌리
전통적으로 대학은 게마인샤프트적 성격을 지녔다. 교수와 학생, 연구자들은 공통된 학문적 목적 아래 비교적 긴밀한 관계망 속에서 존재해왔다. 지도교수와 제자의 관계, 학과 내 선후배 문화, 학문을 둘러싼 토론과 공동 탐구의 전통은 단순한 이해관계를 넘어선 공동체적 유대를 형성해왔다. 이러한 관계는 정서적 연대, 정체성, 소속감으로 이어졌고, 이는 대학이 단지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인격과 가치가 길러지는 곳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대학은 점점 더 게젤샤프트적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대학의 현실: 게젤샤프트로서의 경영 압력
오늘날 많은 대학은 조직 운영의 효율성과 성과 중심의 사고를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등록금 수입, 대학평가 지표, 논문 실적, 취업률 등은 대학의 생존을 결정짓는 주요 척도가 되었다. 교수는 연구 성과로 평가받고, 학생은 고객으로 여겨지며, 행정은 사업계획과 실적보고서 중심으로 운영된다. 이 구조는 전형적인 게젤샤프트, 즉 이해관계 중심의 조직이다.
게젤샤프트적 구조는 조직의 운영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대학이 대규모 예산을 관리하고,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며,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합리성과 체계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이 구조 속에서 대학의 본질적 가치,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공동의 목표를 위한 연대, 배움의 기쁨과 성장의 과정이 점점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관계 없는 효율은 공동체를 해체한다
게젤샤프트적 운영은 단기적으로는 효율성과 성과를 높이는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구성원의 몰입도 저하, 소외감, 정체성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이는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갉아먹는 조용한 침식이다. 대학이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면, 구성원은 대학에 충성하거나 기여하기보다는 ‘계약된 역할’만을 수행하는 수동적 존재로 남게 된다. 결국 대학에는 일터만 남고, 배움의 공동체라는 정체성은 사라진다. 진정한 의미의 성과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공동체적 신뢰와 문화에서 비롯된다.

외형은 게젤샤프트, 내면은 게마인샤프트
대학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성과 중심의 체계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체계 안에 무엇을 담을지는 대학의 철학과 운영자의 비전에 달려 있다. 대학이 지향해야 할 미래는 ‘게젤샤프트적 구조 위에 게마인샤프트적 관계를 세우는 조직’이다. 시스템은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공동체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정서적 유대를 느끼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조직은 단순히 외형적인 성과를 넘어서, 관계의 질, 구성원의 만족도, 장기적 협력 가능성 등을 성과로 인정한다. 수직적 명령체계보다는 수평적 토론과 자율적 참여가 중시되며, 구성원은 대학을 단순한 일터가 아닌, ‘나의 공간’, ‘우리의 공동체’로 인식하게 된다.
공동체적 조직은 이익도 창출할 수 있는가?
많은 이들이 반문한다. “이상적이긴 하지만, 실질적인 수익과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답은 “충분히 가능하다”이다. 오히려 게마인샤프트적 문화는 더 지속가능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소속감과 정체성은 강력한 대학 브랜드를 만들고, 이는 충성도 높은 졸업생 네트워크와 기부문화, 자발적 홍보로 이어진다. 심리적 안전감과 공동체적 유대는 구성원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끌어올리며, 이는 곧 혁신과 질적 성과로 이어진다. 공동체적 유대를 기반으로 한 학내외 협력은 산학협력, 지역사회 프로젝트, 국제 연구 네트워크 등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이러한 관계 중심의 생태계는 단기성과가 아닌 장기적 수익 구조로 이어진다.
사례를 통해 본 공동체적 대학의 가능성
핀란드의 알토대학교(Aalto University)는 경제대, 공과대, 예술디자인대를 통합하여 “산업과 예술, 과학의 융합”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새로운 조직문화를 구축했다. 행정은 효율적이고 투명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교수와 학생 간의 수평적 토론문화와 자율적 커리큘럼 설계, 그리고 캠퍼스 내 창의적 협업 공간 등을 통해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s at KGI)은 캠퍼스가 없지만, 세계 각지를 돌며 소규모 커뮤니티 단위로 수업과 생활을 함께하는 순환형 모델을 채택했다. 모든 수업은 토론과 참여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정서적 케어와 공동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이처럼 비전통적인 구조 안에서도 공동체성은 오히려 더 강하게 형성되고 있다.
일본의 리쓰메이칸 대학은 ‘지역과 함께하는 대학’을 표방하며 지역주민과의 연계, 커뮤니티 공간 개방, 학생 주도 프로젝트 등을 통해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를 조성했다. 이는 대학이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들 사례는 모두 게젤샤프트적 구조 안에서도 게마인샤프트적 문화를 어떻게 구현하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직의 외형은 효율과 성과를 따르지만, 그 안의 작동 원리는 신뢰와 연대, 공동의 가치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다.
미래 대학은 어떤 얼굴을 가져야 하는가
미래의 대학은 성과 중심의 시스템을 갖추되, 사람 중심의 문화를 지향하는 조직이어야 한다. 외형은 게젤샤프트이되, 내면은 게마인샤프트인 조직. 서로를 신뢰하고, 공동의 가치를 향해 나아가는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그런 대학만이 위기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조용하지만 지속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대학에서 성장한 이들은 결국 더 나은 사회를 이끌어갈 인재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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