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영화가 던지는 질문, 오늘날 AI 시대에도 유효할까?
1994년 개봉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는 단순한 영화광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작품은 영화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창작과 모방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그리고 지금, AI가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병석의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창작의 윤리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야 하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표절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석의 시나리오, 그리고 표절의 문제
영화의 주인공인 병석은 헐리우드 영화에 심취한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대사와 장면을 자신의 삶처럼 받아들이고,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친구 윤명길에게 건넨다. 명길은 그것이 훌륭한 창작물이라 생각하며 영화로 제작하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영화 속 장면과 대사가 모두 기존 헐리우드 영화에서 가져온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병석 자신조차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뒤늦게 깨닫고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장면은 표절과 창작의 경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30년 전만 해도 ‘표절’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정교하게 정립되지 않았지만, 병석조차 그것이 잘못된 일임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죄책감을 느낀다. 당시 사람들은 이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못했더라도, 적어도 ‘나쁜 일’이라는 공감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AI 시대, 창작의 의미는 달라졌는가?
오늘날 AI는 문서, 기사, 소설을 생성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만든 콘텐츠를 사람들은 무심코 소비하며, 때로는 창작자의 노력과 구별하지 않는다. AI로 생성된 소설을 작가의 이름으로 출판하거나, AI가 만든 음악을 작곡가의 창작물로 발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과연 창작일까, 아니면 단순한 데이터의 조합일까?
표절과 창작의 경계는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지만, 그 과정이 인간의 창작과 어떻게 다른지를 명확히 구별하기는 어렵다. 과거 병석이 헐리우드 영화를 조합해 시나리오를 작성했듯, AI 또한 기존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합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만약 AI로 작성된 논문이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 우리는 저자를 창작자로 인정해야 하는가?
AI와 협업한 창작물,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이제는 AI와 협업하여 창작하는 것이 점점 더 일반적인 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AI의 기여를 인정할 것인가, 숨길 것인가?
예를 들어 한 작가가 AI의 도움을 받아 소설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그가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나의 순수한 창작물’이라고 말했지만, 이후 AI의 기여가 밝혀진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를 표절로 간주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단순한 창작 방식의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미 일부 학계에서는 AI를 논문 작성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으며, AI로 생성된 그림이 미술 시장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면, AI의 기여를 감춘 채 ‘내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우리는 병석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을까?
병석이 시나리오를 쓸 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창작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영화 장면의 짜집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내가 헐리우드 키드에게 속았다”고 고백한다. 지금 AI를 활용하는 많은 이들은 자신의 작품이 얼마나 기존 데이터의 영향을 받았는지 인지하지 못한 채 창작물을 내놓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우리가 AI가 생성한 글과 그림을 ‘창작’이라고 부를 것인지, 단순한 데이터 조합이라고 여길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만약 AI의 도움을 받은 창작자가 이를 숨겼다가 나중에 밝혀진다면, 우리는 병석처럼 부끄러움을 느낄까? 아니면 단순히 새로운 창작 방식의 일부로 받아들일까? 우리는 여전히 인간만의 창작을 신성시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AI와 인간이 함께 만든 작품도 동등한 가치를 가져야 할까?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만든 것은 진짜 내 것인가?” 30년 전 영화가 던진 질문은,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