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취업-은퇴’의 3단계 생애모델을 넘어, 평생학습을 위한 대학의 새로운 사명
삶이 100년이라면, 교육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현대 사회는 인간의 기대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는 ‘초장수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의학, 위생, 교육의 발전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질 높은 삶’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교육 체계, 특히 고등교육은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가?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대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리 릴리 콩(Lily Kong) 싱가포르경영대학(SMU) 총장과 공저자 해미시 코츠(Hamish Coates)는 “100세 생애를 전제로 한다면 대학은 20대 초반의 3~4년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University World News에 게재한 칼럼에서 “대학은 이제 인생 전반에 걸쳐 재학습과 재훈련을 지원하는 기관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100세 시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교육-취업-은퇴’ 3단계 생애모델의 붕괴
기존의 교육·노동·은퇴라는 3단계 생애모델은 이제 그 유효성을 잃고 있다. 평균 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는 시대, 한 번의 학위로 80년 가까운 삶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중년 이후 새로운 직업을 모색하거나, 전혀 다른 분야로의 이직을 꿈꾸고 있다.
따라서 대학은 생애주기의 특정 시점이 아닌 전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는 단지 ‘성인 대상 강좌’의 확장이 아니라, 대학의 존재 목적 자체를 재정의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대학은 더 이상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대학이 평생교육 시대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지식 전달자’의 역할을 넘어서야 한다. 대학은 이제 개인과 지역사회, 국가의 역량을 성장시키는 ‘촉진자(enabler)’가 되어야 한다. 즉, 학위 수여와 논문 출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삶을 바꾸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변화를 요구받는다.
1. 인지 능력 너머의 교육으로 확장하라
중세 대학의 기원부터 최근까지, 고등교육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됨을 함양하는 장이었다. 그러나 대량 교육 체제로 확장되면서 많은 대학이 ‘교양 없는 전공교육’으로 축소되었다. 다시금 대학은 정서적·도덕적·사회적 감수성까지 포함한 전인교육을 회복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2. 독립성과 실험정신을 자극하라
대학은 학생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가치를 탐색하고, 실패를 감내하며 새로운 길을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스스로 찾아가는 자기주도적 학습 경험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보다 유연한 전공 변경, 실험적인 과제 설계, 자기주도형 프로젝트를 장려해야 하며, 다양한 실패를 학습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3. 인문학을 재조명하라
최근 수십 년간 인문학은 ‘비실용적’이라는 오해와 예산 삭감으로 위축되어 왔다. 그러나 AI 시대, 인간의 감정과 공감, 윤리, 문화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예술, 철학, 문학, 사회과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기계화될 수 없는 영역’에서의 생존력을 길러준다. 따라서 인문학은 평생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하며, 모든 전공에서 교차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4. 학제 간 통합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라
하나의 전공만으로 복잡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대학은 ‘학제 간 융합’을 통해 지식의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AI 윤리, 지속가능성, 신경경제학 등 신흥 융합 분야는 그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학제 간 통합은 단순히 교과과정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문제 중심 학습(PBL), 팀 기반 프로젝트, 현실 과제와의 연계를 포함해야 한다.
5. 교육정책과 제도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고등교육 제도는 여전히 전통적인 3단계 생애모델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다. 학비 보조, 장학금, 학점 체계, 학위 인증 모두 청년기 중심이다. 그러나 평생학습을 위해서는 모든 제도를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대학이 다단계 학습, 모듈형 강좌, 짧은 자격증 과정 등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적 유연성을 제공해야 하며, 이를 위한 재정 지원도 뒷받침해야 한다.

대학 연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학의 또 다른 핵심 기능인 ‘연구’ 역시 재정립이 필요하다. 현재 많은 연구는 평판 중심의 국제 경쟁을 목표로 진행되며, 단기적인 논문 실적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사회문제 해결, 지역사회 기여, 대중과의 소통 등 실질적인 ‘영향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실천이 필요하다.
- 이해관계자 참여: 정책입안자, 기업, 시민단체 등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의 방향성을 설정한다.
-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 활용: 팟캐스트, 유튜브, 전시회, 교육 가이드, 정책 보고서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연구 결과를 일반 대중과 공유한다.
- 연구 성과 평가 방식의 개혁: 논문 수, 인용 횟수가 아닌 사회적 파급력, 현장 적용성 등을 중시하는 평가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대학이 스스로를 묶는 사슬을 끊어야 할 때
1990년대 후반부터 많은 대학은 ‘세계 수준의 대학(World Class University)’을 지향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화 전략은 현재 수익 감소, 경쟁 과열, 연구 부정행위, 교육의 상업화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특히 교육은 정체되고 있으며, 등록률은 낮아지고 있고, 커리큘럼은 기술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 ‘초전문화’는 노동시장과의 괴리를 낳았으며, 대학 교육이 삶의 변화를 유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크다.
이제 대학은 다시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해야 한다. 더 이상 ‘국가 성장의 도구’도, ‘학생 유치의 수익 구조’도 아닌, 인간 삶 전반을 품는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핵심 기관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의 용기와 상상력, 그리고 정책적 지지 속에서 가능하다. 사람들의 생애가 100년에 가까워지는 시대, 대학은 그 전 생애를 함께 걷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100년을 함께할 대학을 위한 선언
대학은 변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과 연구의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묻고, 변화에 응답하며,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100세 시대에 걸맞은 대학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따라야 한다:
모든 연령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교육과 연구는 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인문학과 과학, 기술이 통합되어야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행정과 제도는 유연해야 한다.
이제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위한 등불’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대학이 100년을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길이다.
#100세시대 #평생교육 #대학개혁 #고등교육혁신 #인문학의부활 #학제간융합 #재교육 #연구의사회적책임 #성인학습자 #지속가능한대학 #대학의공공성 #LifelongLearning #UniversityFutures #HamishCoates #LilyKong #HigherEducationPoli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