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향, 오류, 조작, 규제… 인공지능의 윤리적 진화는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
AI는 더 똑똑해졌고, 더 가까워졌으며, 더 많은 곳에 쓰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AI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2025 AI 지수 보고서』는 이 질문에 대해 전 세계 데이터를 바탕으로 복합적인 답변을 제시한다. 이번 회차에서는 ‘책임 있는 AI(Responsible AI)’라는 키워드 아래, AI의 윤리성과 안전성, 그리고 이를 위한 정책과 제도, 기술적 노력들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살펴본다.
사고와 오류는 증가하고 있다 – 233건의 사고 보고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 세계적으로 AI 시스템과 관련한 주요 사고 사례가 233건 보고되었다. 여기에는 자율주행차 충돌 사고, 의료영상 분석 오류, 음성 비서의 오작동, 잘못된 금융 알고리즘 추천, 허위 정보 생성 및 유포 등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 특히 대화형 AI와 생성형 모델의 허위 정보 생성 능력(hallucination)은 정보의 신뢰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급부상했다.
또한 보고서는 이들 사고가 특정 국가나 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산업 전반과 공공 서비스 영역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교통체증 예측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실제 교통량과 배치가 어긋났고, 미국에서는 AI를 통한 형사사건 재범 예측 알고리즘이 특정 인종에 불리하게 작동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불균형을 강화할 수 있는 위험성으로 인식된다.
편향된 데이터, 불투명한 알고리즘 – 구조적 문제의 본질
AI 사고의 다수는 기술적 실수가 아니라 구조적 편향에서 비롯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상업용 AI 모델 중 다수는 특정 인종, 성별, 국적에 대해 비례적이지 않은 학습 데이터를 기반으로 훈련된다. 그 결과, 인종차별적 발언을 학습하거나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응답을 생성하는 등 사회적 편견을 증폭시킬 수 있는 결과물이 생성된다.
보고서는 이러한 편향이 단순한 데이터 수집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이윤 중심적 알고리즘 설계와 사회 전반의 비대칭적 정보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예컨대, 특정 국가의 뉴스 데이터가 AI 학습에서 과잉 반영되면, 타 지역의 맥락은 왜곡되기 쉽다. 이는 다국적 AI 기술의 글로벌 공정성 확보에 있어 심각한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한, 대부분의 AI 기업이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른바 ‘블랙박스 AI’는 이용자는 물론, 규제 기관도 그 판단 근거를 파악할 수 없게 만들며, 이는 사회적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AI 안전을 위한 새로운 평가 지표들 – HELM, FACTS, AI-Bench
『2025 AI 지수 보고서』는 AI 시스템의 윤리성과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들도 소개하고 있다. HELM(Holistic Evaluation of Language Models), FACTS(Fairness, Accountability, Confidentiality, Transparency, and Safety), AI-Bench 등은 기존의 성능 중심 지표를 넘어 공정성, 설명 가능성, 위험 회피력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이다.
HELM은 텍스트 생성의 정확도뿐 아니라, 편향 여부, 유해성 가능성, 윤리적 판단 능력 등을 평가하는데 초점을 둔다. 이는 단순히 “잘 작동하는 AI”에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AI”로 평가 기준을 전환하고자 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FACTS는 각 모델이 얼마나 책임 있고 투명하게 작동하는지, 안전성은 어느 수준인지에 대한 구조적 진단을 제공한다.
AI-Bench는 멀티모달 모델을 중심으로 확장되고 있는 AI 기술에 대해, 언어·영상·감정 인식 등 다양한 층위의 평가를 시도하며, 인간과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충격을 사전에 예측하고자 한다. 이들 지표는 아직 실험적 단계에 머물고 있으나, 향후 국제 표준화 논의의 핵심 기초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딥페이크와 선거 개입 – 민주주의의 위협
2024년에는 70개국 이상에서 주요 선거가 치러졌으며, 이 과정에서 AI가 제작한 딥페이크 영상과 허위 정보가 실질적인 정치적 혼란을 야기했다. 보고서는 AI 기반의 정보 조작이 단순한 장난이나 해프닝을 넘어,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럽 선거 국면에서 특정 후보의 거짓 발언이 딥페이크 기술을 통해 확산되어, 공공의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된 사건이었다. 또한 일부 극단주의 단체는 AI 기반 영상 생성기로 허위 역사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특정 이념을 퍼뜨리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행위는 단순한 가짜뉴스가 아니라, 정보 생태계 전반을 교란하는 전략적 무기로 진화하고 있다.
보고서는 AI 기반 정보 조작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개발과 더불어 시민 교육, 플랫폼 책임 강화, 국제 협력 등의 다층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특히 글로벌 차원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규제와 법제화는 어디까지 왔는가 – 미국, EU, 한국의 사례
AI에 대한 규제와 법제화는 전 세계적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은 2023년 기준 59건의 AI 관련 법안을 발의했으며, 42개 연방 기관이 자체 AI 가이드라인을 제정 중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AI 윤리 기준 수립과 함께, 연방기관에 AI 투명성 의무를 부여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AI법(AI Act)’을 도입해 고위험 AI 시스템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AI법은 위험 기반 접근방식을 채택하여, 사용 목적과 위험 수준에 따라 다른 규제를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위반 시 과징금 부과 조항도 포함된다.
한국은 2024년 11월 개최된 ‘서울 AI 정상회의’를 계기로 글로벌 규범 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인간 중심 AI 원칙’을 바탕으로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공공부문 중심의 AI 책임 평가 프레임워크도 마련 중이다. 동시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스타트업 대상의 AI 윤리 검증 지원 사업도 추진 중이다.
책임 있는 AI의 조건 – 기술, 제도, 인식의 삼각 균형
보고서는 책임 있는 AI의 실현을 위해 세 가지 축이 동시에 작동해야 함을 강조한다. 첫째는 기술적 기반이다. AI가 공정하고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데이터 구성, 알고리즘 설계, 평가 지표 등이 정교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둘째는 제도적 기반이다. 정부와 국제기구는 AI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사회적 리스크를 사전에 규제하고,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는 사회적 인식이다. 시민들은 AI가 마치 절대적 진리를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이 설계한 불완전한 도구임을 인식하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특히 ‘디지털 시민성’의 관점에서 볼 때, AI 사용자는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판단 능력을 가진 참여자로서, AI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와 판단을 항상 비판적으로 검토할 책임이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는 AI와 함께 살아갈 미래 사회가 단지 기술적 진보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2025 AI 지수 보고서』는 단순히 기술의 성능만을 나열하는 보고서가 아니다. 그것은 AI가 사회적 실재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서이자, 우리가 기술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묻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교육과 데이터, 그리고 AI의 환경적 지속가능성 문제를 중심으로 AI 사회의 구조적 기반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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