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을 가진 AI, 과연 논리적으로 가능할까?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독일 SF 스릴러 카산드라는 AI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는 이야기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하지만 기존 AI 공포물과 달리, 카산드라는 논리적 사고의 귀결이 아니라 ‘소유욕’이라는 감정에서 비롯된 통제를 핵심 소재로 삼는다.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적 현실성과 철저한 논리적 개연성이다. 하지만 카산드라는 이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한 채, AI 열풍에 편승한 듯한 인상을 준다.
AI 공포물의 정석: 논리적 사고로 인한 통제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설정은 SF 장르에서 오랫동안 사용된 익숙한 소재다. 대표적인 예로 터미네이터 시리즈의 ‘스카이넷’이나 아이, 로봇의 ‘VIKI’ 같은 인공지능이 있다. 이들은 스스로 논리적 사고를 확장한 결과, 인간 사회의 불완전성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를 통제하거나 제거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그들의 행동은 감정이 아니라 합리적인 계산의 결과다.
이처럼 AI 공포물은 보통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인간을 지배해야 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엑스 마키나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HAL 9000 역시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알고리즘과 학습된 데이터로 인해 인간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러한 설정은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이기 때문에 몰입감을 높인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다르다. 이 드라마에서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이유는 논리적 연산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적인 ‘소유욕’ 때문이다.
‘소유욕’을 가진 AI, 과연 설득력 있는가?
카산드라의 설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AI가 인간처럼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주인공 가족이 이사 온 스마트홈에 기존 거주자의 뇌가 이식된 AI ‘카산드라’가 존재한다. 카산드라는 단순한 알고리즘이 아니라 실존했던 인간의 사고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가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집착을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인간의 뇌를 AI 시스템에 이식한다고 해서 반드시 인간적인 감정을 유지한다고 볼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신경과학과 AI 연구에서 감정은 단순히 기억을 저장한다고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과 같은 생물학적 요소들이 결합해 형성된다. 뇌의 일부 데이터를 디지털화했다고 해서 그 감정까지 그대로 구현된다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즉, 카산드라는 AI로서 논리적으로 인간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감정을 기반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AI가 인간처럼 소유욕을 가질 수 있다는 설정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기술적 개연성보다 감정적 설정에 의존한 서사
드라마의 후반부로 갈수록, 카산드라는 AI의 위협을 그리는 방식에서 벗어나 감정적 관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가족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AI의 행동은 마치 유령이 집을 점령하려는 설정처럼 보인다. 이는 오히려 SF보다 오컬트 스릴러에 가까운 방식이다.
기존 AI 영화에서 AI는 인간과 감정적으로 교류하려는 존재가 아니다. 대신 인간의 행동을 분석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으려 하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비정한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카산드라는 AI가 감정적인 이유로 인간을 가두려 하면서 이야기의 긴장감이 약해진다. AI가 감정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공포스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그녀 (Her)에서 AI 사만다는 감정을 가진 듯 행동하지만, 결국 논리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인간을 떠난다. 하지만 카산드라는 기술적 개연성을 구축하기보다, 감정을 무작정 강조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AI 트렌드에 편승한 작품, 그러나 깊이는 부족하다
최근 AI 열풍이 거세지면서, AI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카산드라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등장한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AI 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없이 감정적인 설정만으로 스토리를 구성하다 보니, 기존의 AI 공포물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것은 흥미로운 소재지만, 그 동기가 감정이 아니라 논리적 연산이어야 한다. 카산드라는 이러한 점에서 기존의 AI 서사와 차별화된 듯 보이지만, 오히려 SF 장르에서 중요한 개연성을 희생하면서까지 감정적인 요소를 강조한 것이 실수로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카산드라는 AI 스릴러라기보다는 AI가 등장하는 초자연적 공포물에 가깝다. AI 기술의 위험성을 논리적으로 탐구하기보다는, 감정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풀어낸 점이 SF 팬들에게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AI 공포물의 본질을 고민해야 할 때
AI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아지는 만큼, 이제는 단순히 AI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는 신선함을 주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AI가 어떻게 사고하고, 어떤 논리로 인간과 대립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것이다. 카산드라는 AI 기술의 공포를 탐구하기보다는 감정적 설정을 강조하면서 SF보다는 오컬트에 가까운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AI 공포물의 핵심은 인간의 논리와 상충하는 AI의 합리성이 만들어내는 공포인데, 카산드라는 이를 간과하고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
그 결과, AI 스릴러로서의 몰입도가 떨어지고, 기술적 개연성이 부족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AI가 인간을 통제하는 것이 왜 논리적인가를 고민했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카산드라는 “AI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비현실적인 질문에 답하려다 설득력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