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우조 아두바가 빛낸 쇼, 그러나 샤론다랜드표 미스터리는 기대에 부응했는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는 2025년 3월 공개되자마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백악관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록드룸 살인 미스터리’라는 설정과, 샤론다 라이언스(Shonda Rhimes)가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브리저튼’의 흥행과 ‘그레이 아나토미’의 전설적 성공을 기억하는 시청자라면, 이번 시리즈 역시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리 간단치 않다.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는 장르적 매력과 시청각적 쾌감,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내러티브 설계나 캐릭터 활용 측면에서 실망을 안긴다.

“132개의 잠긴 방, 150명의 용의자”
시리즈의 출발점은 완벽했다.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 는 ‘클래식 록드룸 미스터리’의 형식을 차용하며 강렬한 첫 장면으로 시작한다. 한밤중 백악관에서 벌어진 호주 국빈만찬 도중, 수석 집사 A.B. 윈터가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사건이 촉발된다. 대통령 가족, 보좌관, 요리사, 그리고 심지어 외교사절까지 총 157명의 인물들이 용의선상에 오르며, 그 자체로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설정은 아가사 크리스티적 전통에 충실하며 시청자에게 ‘과연 누가 범인일까’라는 본질적인 궁금증을 던진다.
우조 아두바의 존재감과 캐릭터의 아쉬움
명연기와 평면적 서사 사이 탐정 코델리아 컵을 연기한 우조 아두바는 그야말로 이 드라마의 중심축이다. 그녀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고전 추리소설 탐정의 기질을 지닌 인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탁월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러나 비판 지점은 컵의 캐릭터 서사가 지나치게 표면적이라는 데 있다. 그녀의 천재성이나 버릇, 혹은 사회성 부족 같은 요소들은 탐정물의 전형을 따르지만, 개인의 내면적 갈등이나 진정성이 느껴지는 서사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반짝이는 이름들이 모였지만 이 작품은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 랜들 박, 수잔 켈레치 왓슨, 제인 커틴, 켄 마리노 등 익숙한 얼굴들의 향연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캐릭터들이 각각 충분히 살아 숨 쉬기보다는, 플롯을 위한 도구처럼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스타 캐스팅’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로 시청자의 눈을 끌어들이고는, 그 내부의 구성이 허술하다는 인상을 준다. 등장인물의 관계와 동기 설정이 얕기 때문에 몰입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래시백 구조의 양날의 검: 장르 관습인가, 과잉 설명인가
이야기는 사건 이후의 청문회 장면과 당시의 사건 당일을 번갈아 보여주는 플래시백 구조를 따른다. 이는 사건의 진실에 서서히 접근해가는 전형적인 서사 전략이지만,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에서는 자칫 과도한 반복과 요약으로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캐릭터들이 자신의 입으로 줄거리 요약을 하거나, 시청자가 이미 본 장면을 다시 설명하는 장면이 자주 반복되며 ‘시청자의 주의력 저하’를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점은 백악관이라는 장소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의도적으로 정치적 긴장감을 배제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동성혼 상태의 백인 남성으로 묘사되며, 현실 세계와 유사하지만 구체적 맥락은 흐릿하게 처리된다. 이는 일종의 ‘정치적 무균지대’를 창출해 시청자에게 일상과 분리된 환상을 제공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현실 정치와의 관계성을 고민하지 않는 방식은 회피에 가깝다는 시각도 있다.
진짜 미스터리는 살인이 아니라, 이 쇼의 목적이었다
극 중 살인 사건은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동력이다. 그러나 에피소드가 전개될수록 진짜 미스터리는 ‘누가 죽였는가’보다는 ‘이 시리즈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바뀐다. 이 작품은 탐정물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권력과 감정, 시스템의 작동을 풍자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는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일종의 메타적 실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넷플릭스 스타일’ 서사 전략의 한계: 시청률을 위한 구조적 반복
넷플릭스 드라마 특유의 ‘몰아보기’ 형식에 최적화된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는 각 회차마다 유사한 구조를 반복한다. 용의자를 불러 심문하고, 중간에 반전이 발생하며, 마지막에는 다음 회차로 넘어가는 미끼를 던진다. 이러한 방식은 초반에는 몰입을 유도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피로감을 유발한다. 특히 마지막 에피소드의 90분 러닝타임은 긴장감을 이어가기보다 루즈함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유쾌함 vs. 깊이: 시청자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
이 시리즈는 명확히 ‘즐거움을 주기 위한’ 콘텐츠다. 매 에피소드에는 위트 있는 대사와 유쾌한 전개, 시각적 즐거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만큼 감정적 깊이나 서사적 밀도는 부족하다. 이는 장르적 특성 때문일 수도 있지만, 시청자의 기대 수준이 높아진 현재에는 단순히 ‘유쾌함’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는 이 딜레마를 풀지 못한 채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는 ‘나이브스 아웃’부터 ‘다이얼 M’까지 작품 전반에 걸쳐 ‘장르 팬’들을 위한 오마주가 넘친다. 회차 제목은 ‘다이얼 M 포 머더’, ‘나이브스 아웃’ 등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경의를 담고 있으며, 사건 구성 역시 다양한 추리극의 요소들을 차용하고 있다. 이는 장르적 쾌감을 높이는 동시에, 비교 대상이 많아졌을 때 약점도 쉽게 드러나는 양면성을 가진다. 다만 이 오마주들이 진정한 창의적 재해석보다는 형식적 인용에 그쳤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가 남긴 질문들
정치, 권력, 그리고 유희 결국 는 우리에게 하나의 질문을 남긴다. 권력의 중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다루며, 이 작품은 권력 자체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 권력을 둘러싼 유희, 시스템, 인간관계에 집중한다. 이것이 샤론다랜드가 그리고자 한 새로운 미스터리의 방향일까? 혹은 단지 가볍고 유쾌한 드라마로 남길 바랐던 것일까? 그 의도는 명확하지 않지만, 시청자 각자의 해석이 허용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사건현장이 되어버렸다(The Residence)’는 흥미로운 실험이자 과감한 시도다. 살인 미스터리 장르에 코믹한 터치와 백악관이라는 공간의 역설을 녹여내려는 이 드라마는, 많은 면에서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럼에도 시청할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우조 아두바의 연기는 단연 돋보이며, 그녀의 캐릭터 ‘코델리아 컵’은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러나 캐릭터 간의 서사적 밀도나 사건의 전개 방식, 과도한 회상 구조 등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시리즈는 결국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이야기라기보다, 권력과 시스템의 어두운 이면을 유쾌하게 소비하고자 하는 넷플릭스식 판타지다. 완성도가 아쉬울지라도, 이 ‘불완전한 퍼즐’은 우리가 잠시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는 여덟 시간짜리 은신처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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