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고등교육의 재정 위기, 신뢰 상실, 그리고 생존 전략
영국의 고등교육 기관들은 지금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재정 악화, 학생 수 감소, 정부와 사회의 외면이라는 삼중고 속에서, 대학들은 “친구 없는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 표현은 단지 감정적인 탄식이 아니라, 정책, 구조, 경제 환경 변화 속에서 실제로 대학이 처한 고립 상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2025년 3월 26일자 University World News에 실린 존 케이터(John Cater) 박사의 칼럼은 영국 고등교육의 위기를 해부하며,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고등교육의 계보와 오만의 뿌리
영국 대학들은 계보를 중시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옥스브리지(Oxbridge)를 정점으로 고대대학(Ancients), 붉은벽돌대학(Red Bricks), 시민대학(Civics), 플레이트글라스대학(Plateglass), 고등기술대학(CATs), 1992년 이후 신설대학, 2004년 이후 및 2012년 이후 설립 대학까지 다양한 ‘계층’이 존재한다. 이들 사이의 위계는 단지 설립 연도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과 자원 배분에도 깊이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1988년과 1992년 교육법 이후 대중교육의 흐름 속에서 높은 수요와 정책적 지원으로 대학들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는 종종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며 안일함을 키웠고, 그 결과 대학은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존재 이유를 설득하는 데 소홀했다.
현실은 냉혹하다. 2012년 도입된 9,000파운드의 등록금은 2025년 현재 실질 가치가 6,000파운드 수준으로 떨어졌다. 2025-26년 예정된 등록금 인상(9,535파운드)은 고용주 부담의 연금 및 사회보험 증가분으로 인해 실질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정부 재정 우선순위에서 고등교육은 국방, 보건, 사회복지, 초중등교육보다 후순위로 밀려 있다.
2022년 도입된 학자금 대출 상환기간 40년 확대, 상환 개시소득 하향 조정 등의 조치로 인해 졸업생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는 추가 인상은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재정 감소에 대한 대학들의 반응은 ‘볼륨 증가’ 전략이었지만, 교육 및 연구 단가(TRAC 기준)는 현재의 등록금으로도 비용을 충당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학생 의존, 그리고 그 붕괴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많은 대학들은 전면적으로 국제학생 유치에 의존하게 되었다. 국제학생은 ‘총비용+마진’ 구조로 수익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동반자 비자를 철회하면서 수요는 급락하고 있으며, 단기간 내 정책 변화 가능성도 낮다.
또한 18~19세 청년 인구는 2030년부터 2036년까지 6분의 1, 즉 10만 명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도 이미 전체 대학의 3분의 2가 2025-26년 운영적자에 직면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정부나 규제 당국 모두 개별 대학의 파산에 대한 구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불균등 성장
학생 수 증가는 상위 소수 대학에 집중되었다. 2015년 학생 정원 상한제가 폐지되면서 전반적인 수요는 증가했지만, ‘고인지도 고성적 대학(high-tariff institutions)’이 대부분을 흡수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중간권 대학조차 하향세를 보였고, 정부가 선호하는 실습 기반 전공보다 교실 기반 전공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도 발생했다.
연구비는 일부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 2029년 연구우수성프레임워크(REF)에서도 연구자금의 4분의 3이 12분의 1의 대학에 배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수 엘리트 대학만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지역 기반으로 축소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영국 대학의 3분화(trifurcation) 시나리오
케이터 박사는 2030년경 영국 대학이 세 갈래로 분화될 것이라 전망한다. 첫째, 여전히 정규 대입 루트를 거쳐 입학하는 전일제, 기숙사 기반의 캠퍼스형 대학이 있다. 이들은 1992년 이전 설립된 전통 명문대학들이 주도할 것이다.
둘째,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는 지역대학 모델이다. 예컨대 맨체스터 시장 앤디 버넘(Andy Burnham)이 추진 중인 ‘ManBac'(지역형 고교 졸업 인증)과 같이, 지역정부가 3단계(Level 3) 교육을 통제하는 흐름 속에서 대학은 지역 공공서비스, 기업과 연계된 실무 중심 교육을 확대하게 된다.
셋째는 온라인 고등교육의 혁신이다. 엘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조스, 샘 알트만 등 기술 대기업들이 AI와 플랫폼을 활용해 국경을 초월한 대체 교육 체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존의 ‘인증기관 중심’의 국가 자격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다.
생존 조건: 수요, 기업 참여, 규제 완화, 재정 구조
그러나 위 3가지 모델 모두 일정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지역대학이나 실무형 전공에 대한 충분한 수요와 기업의 참여가 확보되어야 한다. 둘째, 현재 과도한 행정 절차와 규제 장벽이 완화되어야 한다. 셋째, 무엇보다도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재정 모델이 확립되어야 한다.
영국 정부가 추진 중인 ‘평생학습자격(Lifelong Learning Entitlement)’ 제도는 이러한 구조 변화의 실험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자격제도의 혜택은 인증기관이 제공하는 교육에만 한정되어 있어, 새로운 민간 플랫폼이나 혁신모델이 진입하기에는 제약이 많다.
케이터 박사는 영국 대학이 처한 고립은 자업자득이라고도 말한다. 과거의 특권을 당연하게 여기고, 사회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새로운 파트너십을 모색해야 한다. 지역사회, 산업계, 시민사회와의 연결 속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를 다시 정의할 때다.
기술 혁신, 인구 구조 변화, 정부 재정 제약, 교육 수요 재편 등은 단지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학이 이 변화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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