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대학들은 등록금 동결이라는 오랜 관행과 재정난 사이에서 심각한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지난 17년 동안 이어진 등록금 동결 정책은 대학 운영에 필수적인 재정을 제약하며, 고등교육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대학들도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학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단순히 특정 국가의 사례가 아니라 글로벌한 고등교육 위기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등록금 동결의 그림자
교육부의 통계에 따르면, 2025학년도 기준 57개의 대학이 등록금 인상을 고려하거나 이미 제안한 상황이다. 특히 사립대학의 경우 85.2%가 등록금 인상을 선택했으며, 수도권 대학에서는 84.4%가 인상을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의 재정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는 등록금 동결 기조를 유지하며,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재정을 충당하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다.
등록금 동결의 이면에는 국가장학금 II 유형과 같은 보조금 체계가 자리하고 있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대학의 운영비와 연구비가 등록금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동결 정책은 결국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고, 연구 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사립대학들은 이미 제한된 재정 자원으로 인해 학문적 다양성과 교육 환경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 대학들이 처한 현실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세계의 주요 대학들 역시 재정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일부 주립대학들은 재정 부족으로 인해 강좌를 축소하고, 교수진을 감축하며, 심지어 일부 캠퍼스를 폐쇄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EU) 학생들로부터의 학비 수입 감소가 대학 운영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재정난은 단순히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전체가 나서야 할 문제임을 보여준다. 일본의 경우, 18세 학령인구가 1992년 205만 명에서 2005년 137만 명으로 급감하면서 일부 소규모 지방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는 등 ‘대학 도산 시대’를 맞이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일본 대학들은 자체적인 정원 조정, 정원 미달 학과 폐지, 규모가 더 큰 대학과의 합병 등 생존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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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논쟁의 새로운 접근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학, 지역사회가 협력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우선, 등록금 동결이라는 단기적인 해결책에서 벗어나, 적정 등록금을 책정하여 대학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대학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재정 구조를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둘째,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대학들이 학문적 연구와 교육 환경 개선에 투자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장기적인 재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대학에 대한 지원을 넘어서, 고등교육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등록금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대학 교육은 단순히 학생과 대학 간의 계약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관여해야 할 공공재이다. 따라서 지역사회와 산업체, 그리고 정부가 함께 참여하여 고등교육의 가치를 높이고, 교육의 기회를 공정하게 분배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강요가 아닌 협력으로
현재의 등록금 동결 정책은 대학들에게 강요된 선택지에 가깝다. 정부는 대학들이 자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하도록 내버려 두기보다는, 이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고등교육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마치 가뭄 속에서 물을 나눠주기보다는, 근본적인 수자원 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 대학과 정부,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야만, 한국의 고등교육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며 미래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등록금 논쟁은 단순히 대학과 학생 간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국가와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등록금 동결이라는 단기적인 정책은 대학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오히려 고등교육의 위기를 가중시킬 뿐이다. 이제는 적정 등록금을 책정하고, 정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하며, 사회적 협력을 통해 고등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할 때다. 미래 세대를 위한 고등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지금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