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들이 다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성폭력 대응 규정을 채택해야 한다는 교육부의 발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최근 켄터키 연방 판사가 바이든 행정부의 타이틀 IX(Title IX) 개정을 무효화하면서 촉발된 조치로, 캠퍼스 내 성폭력 사건 처리 절차가 2020년 베시 디보스(Betsy DeVos) 전 교육부 장관이 마련한 규정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한다.
타이틀 IX(Title IX)란?
타이틀 IX(Title IX)는 1972년 미국에서 제정된 연방법으로, 교육기관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이 법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교육기관에 적용되며, 성폭력 및 성희롱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할 의무를 부과한다. 그동안 이 법은 성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을 넘어 대학 내 성폭력 사건 처리 기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법적 근거로 활용되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타이틀 IX를 개정하여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를 강화하고,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퀴어 등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차별도 금지하는 조치를 추가했다. 하지만 보수 성향의 법원에서 이를 무효화하면서 다시 트럼프 행정부의 규정을 따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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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의 성폭력 대응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디보스 전 장관이 도입한 2020년 규정은 피고 측(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에게 보다 강력한 보호를 제공하는 대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해당 규정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교차 신문 절차의 의무화: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법적 대리인으로부터 질문을 받아야 하는 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피해자에게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신고를 위축시킬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있다.
성희롱 정의 축소: 이전까지 광범위하게 인정되던 성희롱과 성폭력의 정의가 대폭 축소되면서, 실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보호받기 어려운 구조로 변했다.
대학의 책임 축소: 대학이 성폭력 사건을 처리하는 책임이 ‘의도적인 무관심(deliberate indifference)’을 보인 경우에만 인정되도록 변경되었다. 이는 대학이 적극적인 개입을 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책임을 면할 가능성을 높인다.
이러한 조치들은 피해자 보호보다는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성폭력 생존자들의 신고율을 낮추고 대학 내 안전한 환경 조성에 역행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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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는 왜 이런 정책을 추진했는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는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동시에, 성폭력 사건 처리에서 ‘억울한 가해자’를 줄이겠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여러 차례 ‘미투(Me Too)’ 운동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밝혔으며, 대학 내 성폭력 조사 절차가 남성 학생들에게 불공정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디보스 전 장관 역시 “성폭력 혐의를 받는 학생들의 법적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며, 보다 엄격한 법적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공정성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보호를 약화시키고, 성폭력 피해를 입은 학생들에게 침묵을 강요할 위험이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캠퍼스의 반응: 피해자 보호 단체의 반발
이번 변화에 대해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즉각적인 반발을 나타냈다. 학생운동 단체인 ‘Know Your IX’는 “이 정책 변경은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성폭력 신고율을 더욱 낮출 것”이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또한 미국 대학협회(AACU) 등도 이러한 회귀적 조치가 캠퍼스 내 성평등을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보수적 성향의 단체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규정이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는 필수적인 보호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 재단(FIRE)’은 “이번 조치는 성폭력 혐의를 받는 학생들에게도 적절한 방어 기회를 보장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라고 평가했다.
미래 전망: 대학의 자율적 대응이 중요해진다
법원의 판결로 인해 연방정부 차원의 보호 조치가 후퇴하면서, 각 대학이 개별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일부 대학들은 여전히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을 유지하거나, 독자적인 피해자 보호책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연방정부의 지침이 바뀐 만큼, 대학들이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유지할지, 아니면 법적 위험을 피하기 위해 보다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지는 불확실하다. 이번 변화가 대학 내 성폭력 대응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그리고 학생들의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추가적인 법적 대응이 있을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문제다.